실험실 규모에서 PoC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술을 검증한 제조 기반 스타트업 팀들은 기본적으로 R&D 중심으로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 기반의 제조회사가 되어야 하는데요. 초기에는 급한 대로 외주를 검토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장의 수요를 충분히 찾아내지 못한 창업팀에게 너무 크게 설정된 MOQ(Minimum Order Quantity; 최소주문수량)는 재고 부담을 주고, 시장의 수요가 충분해지는 단계에서는 직접 컨트롤할 수 없는 물량, 납기, 원가와 판매가, 품질관리 등의 이슈가 생기게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 기술이 유출될 수 있는 위험과 생산처 또는 거래처 직원의 무단 생산과 판매 등은 너무나도 흔한 소송거리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기술 개발을 위해 고생한 모든 창업팀이 제품의 생산과 양산에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12 Key Lessons for R&D Startups Entering Manufacturing
제조 기반 스타트업의 외주 생산(BUY; OEM, ODM)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팀과 기관이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리얼라이저블은 직접 생산(MAKE)의 의사결정을 고민하는 팀을 위해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실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12가지 팁을 공유합니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1. 목표를 명확하게 정하자
우리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창업팀은 직접 생산에 대해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수원에 본사가 있으니까, 1시간 이내 거리에 생산 가능한 공장을 찾고 싶다.” 정도로 막연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육하원칙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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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대표님을 포함한 담당자를 먼저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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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우리 제품의 수요를 정리하고 공급 목표 일정을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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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업종과 회사의 사정에 따라 다릅니다. 투자를 약속하는 지자체일 수도 있고, 원재료 소싱처에 가까운 곳 또는 매출처 근처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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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경매나 부동산을 통해 부지나 공장을 찾거나, 시설과 설비까지 갖춰진 곳을 희망하거나, 부족한 매출까지 갖춘 제조회사를 M&A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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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자금 확보 방법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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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다음 단계의 펀드레이징, 시장의 폭발적 수요 대비, 양산 규모의 PoC 요구 등 제품 생산 이유를 명확히 합니다.
예시) “리얼라이저블은 2026년 예상 시장 수요 충족을 위해 원동명 대표와 김경재 부대표가 주도하여 2026년 6월까지 인천남동공단에 1,000평 규모(또는 10,000개/월 생산규모)의 단독공장을 확보한다. 중진공 5억, 신용보증기금 30억 그리고 A Round 투자유치 60억 자금을 통해 취득부대비용을 포함하여 70억을 지출하고 시설과 설비 등 초기 운영 및 셋팅 자금으로 25억을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목표를 구체화했다면, 리얼라이저블에 연락하여 커피챗을 요청하시면 됩니다. (공장 규모 결정, 임차 vs. 매매 판단, 시장 수요 예측 등 막막한 부분이 있다면 저희 팀과의 커피챗을 요청하세요.)
놀랍게도 시장에는 제조 기반 스타트업이 꼭 알아야 할 적정 공장 사이즈 산출, 입지 선정, Make or Buy(MoB) 재무적 의사결정 방법 등에 대한 명확한 정보와 가이드를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2.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자
제품의 양산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들, 관련된 모든 사람과 주체들도 다 적어보세요. 500평 공장, 3T 지게차 3대, 1T 트럭 1대, 주방 이모 등 모든 예상 가능한 것들을 빠짐 없이 나열해야 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작업이 적합한 생산 방식과 창의적인 획득 방법을 포함한, 모든 협상 전략과 도구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서로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할 때를 포함해서 실제로 다양한 협상의 과정과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3. 감정에 집중하자
우리가 무엇보다 감정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거래나 협상이든 스타트업이 지불할 수 있는 재무적 예산은 매우 유한하고 늘 부족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표현, 업계 선배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 가능하다면 존경심, 그리고 부족한 예산에 대한 진심 어린 양해 등 물질적인 것 대신 상대의 감정, 체면, 자존감에 공감하며 경제적 가치를 초월하는 정서적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틀린 말 없는 우리 옛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의 마음을 사는 적절한 말 한마디가 실질적인 보상이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다양한 실무 사례를 통해 합의를 이끄는 요소 중 50% 이상이 인간적인 요소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호감, 신뢰, 서로의 니즈, 사회적 연대, 경험의 공유, 공공의 적을 포함해 상대방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4. 의사소통에 공을 들이자
우선, 미팅 전에 상대방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조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버 천재 이승국이 WWE(미국 프로레슬링)에서 '더 락'으로 유명한 드웨인 존슨을 인터뷰할 때(
YouTube5분 인터뷰로 할리우드 슈퍼스타 드웨인 "더 락" 존슨을 감동시킨 유튜버), 존슨이 레슬링 선수 시절에 사용했던 특기 기술을 언급하며 어렸을 때부터 그를 영웅처럼 생각했고 친구들과 함께 그의 기술을 따라 하며 놀았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또 존슨이 하와이 출신임을 미리 알고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마오이 문화가 등장한 장면을 언급하며 그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렇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질문만으로도 상대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반드시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레퍼런스 체크를 위해서라도 사전에 상대에 대한 조사가 꼭 필요합니다.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거나 상대가 갑작스럽게 바뀌는 경우라도, 미팅 장소의 사무실에 걸린 액자, 사진, 상패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상대방의 관심사를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전에 제조사에서 일할 때, 고객사에 납기를 맞추지 못해 생산 라인이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계약 상 분당 몇 천 만 원의 위약벌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여보고자 담당 공장의 중역과 협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실에 걸려 있던 낚시 사진들을 보고 마침 낚시를 좋아하던 저희 영업 중역이 낚시 이야기를 꺼내자, 처음에 냉랭했던 분위기가 풀렸습니다. 결국 한 시간 동안 낚시 이야기만 하다가 함께 낚시를 가기로 약속을 잡았고, 업무 이야기는 미팅 끝에 가서야 나왔습니다. 그 순간, 고객사 중역은 미조립 상태인 중간 제품만 우리가 직접 조립하면 위약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흔쾌히 협의를 마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거래에서 상대방이 어떤 기대를 하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런 의사결정을 하려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듣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이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히려 협상에 대한 진솔한 정보나 중요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5. 차이를 인정하자
우리가 사고자 하는 가격과 상대방이 팔고자 하는 호가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협상의 모든 측면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각자의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협상의 묘미가 시작됩니다. 협상의 초반에는 서로의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상대가 어디에 어떤 가치를 두는지를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견지해야 할 자세는 그 차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의사소통에 공을 들이자' 항목의 기본적인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6. 상대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자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는 협상의 자리에 가기 전에, 가격이나 특정 조건에만 집중된 일반적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닫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는 사람은 더 많이 받고 싶고, 절대 많이 깎아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든 가격을 깎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가격 하나만 가지고 협상에 나서면 애를 먹기 쉽습니다. 그래서 협상의 ‘구도’를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종의 프레이밍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업종의 선배 회사나 연배가 있는 대표자라면, 우리는 업계의 후배나 동료로서 시장 상황이나 업황의 어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공공의 적’을 설정해 협상의 상대방이 아니라,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같은 업계 사람으로 구도를 전환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스타트업인 우리는 더 나아가 이제 막 시작한 후배 입장에서, 상대방을 업계의 ‘구루’로 인정하고 조언을 구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같은 편에서 고민할 수 있는 프레이밍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즉, 거래의 상대방이 아닌, 우리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주는 동료로 인식될 수 있도록 구도를 바꾸는 것이 핵심입니다.
단, 이 모든 감정적 지불의 핵심은 ‘진심’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아주 잠깐의 표정이나 눈빛, 태도에서 진정성을 잃는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클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차라리 가격 네고만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7.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자
협상을 하다 보면, 정서적 가치가 담긴 감정적 지불을 충분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상대방에게는 가치가 크지만, 우리에게는 난이도가 낮은 재화나 서비스를 찾아내야 합니다.
해외 사업을 하는 건설사나 상사들은 현지 공무원이나 이해관계자에 대한 조사를 할 때,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지 혹은 한국 대학이나 회사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건설사에 근무하던 시절, 담당 공무원의 자녀가 구순구개열(언청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본사에서 의료지원을 통해 완치해준 사례가 있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고 비용도 크지 않았지만, 제3세계 국가에서는 매우 난이도 높고 가치가 큰 의료 서비스였던 셈입니다. 물론, 이로 인해 우리는 상대방에게는 가볍고 쉬운 다른 서비스를 받는 방식으로 ‘교환’이 이뤄졌습니다.
우리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도 어렵지 않은 일이 전통 제조사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일 수 있습니다. 또는 거창하지 않더라도 앞서 언급한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가치가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8. 점진적으로 접근하자
우리 스타트업의 1개월은 일반 회사들의 1년에 가까운 시간으로 비교될 만큼 항상 분주하게 흘러갑니다. 그래도 최소한 협상에서만큼은 한 걸음씩, 그리고 때로는 그 걸음의 보폭을 줄여야 합니다. 상대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제공하고, 상대방이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시점에서 시작해 점차 우리의 영역으로 조금씩 스며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상의 각 단계마다 상대방과의 간격을 확인하고, 그 간격이 멀거나 크게 벌어졌다면 천천히, 아주 조금씩 좁혀나가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시장 수요 확보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잠재 고객 리스트를 구성하고, 연락처를 수집합니다. 그리고 미리 알고 있거나 소개를 받을 수 있는 고객에게는 우리의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고객의 관점에서 소개하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 메일에서는 현재 양산을 준비 중이며 생산량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시장의 수요와 필요 시점을 조사하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꼭 제품을 도입하거나 매입해야 하는 의무는 없으며, 도움을 주신 분들께는 개인적으로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고, 회사에는 물량을 우선 배정하겠다는 약속을 드리세요. 그 다음에는 “예상보다 시장 수요가 많아 우리가 준비 중인 capa를 초과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어서 ‘줄 세우기 전략’을 통해 선주문과 선납금을 받는 단계까지 진입하면, 양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공장이나 회사를 매입하는 협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 이런 사례는 정말 많으니, 언제든 편하게 문의 주세요!
9. 숨겨진 진짜 문제와 의도를 찾아라
실제로 이해되지 않는 조건이나 지나치게 강경한 입장이 있는 경우, 대부분 그 뒤에는 숨겨진 걸림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협상 과정에서 그 진짜 걸림돌이 무엇인지 찾아 해결하려는 사람은 의외로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의사소통에 충분한 공을 들이지 않았거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그 걸림돌이 우리 입장에서는 크게 어렵지 않은 문제인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10. 상황은 계속 바뀐다는 점을 잊지말자
모든 상황에 만능으로 통하는 전략 같은 건 없습니다. 같은 사람과 같은 주제로 협상을 하더라도, 그날의 날씨, 온도, 습도에 따른 상대방의 컨디션이나 집안의 평안 여부 등에 따라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이 바뀌거나, 단 한 명이 추가되거나 빠지는 상황이라도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협의할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11.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자
조금 궁여지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맞습니다, 궁여지책입니다), 생각보다 잘 통하는 방법입니다. 상대방의 정치적 성향, 과거 발언, 인터뷰 기사, 종교와 같은 개인적인 표준부터, 상대 회사나 업종, 업계의 암묵적인 룰까지—모든 표준을 공부하세요.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라면 윤리 강령이나 경영 철학 등, 해당 기업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부 기준들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12.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상대에게 다 털어놓거나, 만만한 상대가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속이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협상에서의 거짓말은 계약 전에는 딜 브레이커(deal-breaker)로, 계약 후에는 소송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행입니다!
이 글을 통해 “아, 나도 이런 고민을 겪고 있었지”라고 느끼셨다면, 이미 절반은 함께 고민을 나눈 셈입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부딪히며 공장주들과 협상하고 직접 설비를 세워본 경험은, 결국 여러분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경험치입니다.
기술력만으로는 양산이 이뤄지지 않고, 자금만으로는 설비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제조 기반 스타트업이 진짜 성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생산 판단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리얼라이저블은 단순한 중개가 아닌, 실전에서 함께 고민하고 실행해본 팀으로서 여러분의 ‘전략적 공장 파트너’가 되고자 합니다.